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주국의 공화주의 (문단 편집) === [[일본]] === 왕실이 많이 세속화된 유럽의 왕국들과는 달리 '''왕실의 정치적 권력은 완전히 상실했지만, 왕실의 신성화는 오히려 더 심해서''' [[일본]]에선 공화주의 주장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일본]]은 [[헌법]]으로 [[천황]]을 공식적인 국가원수가 아닌 단순 국가의 상징이라는 애매한 위치로 명시하고 있지만, 공식적인 국가원수로 명시하고 있지는 않아도 사실상의 국가원수로서 대우하고 예우하고 있다. 왕실의 신성화가 이 정도로 강한 배경은 [[에도 막부]]로 인해 지방분권화가 워낙 심해지자 사실상 일본의 통일이자 일본의 근대화인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정치 세력은 [[국가신토]]를 제정해 종교적으로 천황을 신처럼 받들며 중앙정부에 충성하도록 만들어냈고, 이게 현대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2차대전 당시에도 패전 직전까지도 일본은 다른 조건들은 다 포기했지만, 천황제 유지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정치적 협상에 성공하여 천황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사실 히로히토를 전범으로 처벌하느냐 처벌하지 않느냐를 떠나서 연합국 내에서도 연합국의 전쟁 승전 이후에 일본인들의 반발심을 많이 줄이기 위해 천황제 자체는 계속 유지하기로 합의를 봤다. ] 이 때문에 다른 나라의 공화주의자와는 달리 일본 공화주의자들은 "천황가가 가여우니 공화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메이지 유신 이후로 천황의 신성화가 엄청났음에도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천황의 2차대전에 대한 책임 논란이나 냉전시대 당시 유행하던 공산주의 여론으로 인해 1960년대 후반부터 공개적으로 나서기 시작해 1970년대에 대대적인 투쟁에 나섰다. 하지만 1989년 쇼와 천황 사후 이후에 급속도록 쇠퇴하기 시작해 지금은 대부분 회원들이 고령화인데다가 워낙 천황제 지지 기반이 탄탄해서 극소수만이 천황제 폐지를 지지하고 있는 상태다. 일본의 과거사를 반성하는 이들도 히로히토의 개전 책임 가능성을 낮게 책정하고 있고 이후 아키히토, 나루히토 천황의 개념 행보로 인해 거의 대부분은 천황제 자체는 지지한다. 여론조사에서 천황제 지지가 보통 '''80%'''대 안팎을 보이고 있다. 이는 [[55년 체제]]로 대표되는 일본 국민들의 강한 [[경로의존성]] 때문이다. 하지만, [[마코 공주]]의 [[마코 공주/결혼소동|결혼 논란]]이 벌어지면서 다시금 공화주의 운동이 일어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아직 공화주의자들의 움직임이 수면 위로 떠오르진 않았으나, [[일본 황실]] 내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혼란으로 인해 천황제 지지 여론이 빠른 속도로 식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거기다 일본인들의 심한 정치적 무관심 때문에 지지율이 거의 항상 80%대를 찍기는 해도 황실을 지지하는 이들과 반대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 대부분이 황실을 얕게 지지/얕게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서 황실이 유지되는 현재는 계속 지지하지만 황실에 대가 끊긴다거나[* 실제로 당시 황태자였던 [[나루히토]] 천황이 결혼 이후에도 아들을 못 낳고 딸만 겨우 낳자 일본 정치권에서도 여성 천황의 즉위가 가능하게끔 법을 개정하려는 추진이 있었다. 그것도 전통적으로 남계 천황만을 인정하던 그 자민당 출신 고이즈미가 적극적으로 추진했었다. 그러다가 후미히토와 기코 비가 아들 히사히토를 낳으면서 흐지부지..... 되었다가 후미히토와 그 자식들이 안 좋게 재평가가 되자 나루히토의 외동딸 아이코의 여왕 즉위 가능성이 다시 점쳐지고 있다. ] 위기가 터진다면 적극적으로 황실을 수호하려는 이들은 비율상으로 적은 편이다. 어쩌면 왕실 지지율이 일본보다 낮은 60%대이고 공화주의자들의 잦은 공격에도 시달리지만 그만큼 지지세력의 충성도 역시 탄탄한 영국 왕실보다도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다. [[일본]]의 정당 중에서는 좌파 성향의 [[일본 공산당]]이 2004년까지 천황제 폐지를 주장했었으나 현재는 강령 개정 이후로 개인 차원에서 주장하는 일부 당원들 외에는 거의 주장하지 않는 상태다. 하지만 아직도 좌파 성향을 가진 [[일본인]]들 중에서는 천황제 폐지를 주장하는 자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는 [[좌파]]적 [[아나키즘|아나키스트]]로서 천황제 폐지를 지지하는 쪽에 가깝다.]나 만화 스토리 작가인 [[카리야 테츠]], [[맨발의 겐]] 작가 [[나카자와 케이지]],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있다. 일본 내 좌파 성향 공화주의자들은 대놓고 "헌법개정반대"와 "아키히토 천황 반대"를 외치며 행진하기도 하였고, 이들에게 테러를 하는 극우 세력들도 좀 있다. 그러나 상술하듯 이들 역시 고령화되어 대부분 죽었고, 살아있는 사람은 거의 다 은퇴했다. * 가을폭풍(秋の嵐)이란 단체가 천황제 폐지를 주장한다. 정식 명칭은 '반천황제전국개인공투 가을폭풍(反天皇制全国個人共闘・秋の嵐)'인데 1987년 [[와세다대학]]의 무당파 [[운동권]] 급진파 학생들과 일부 예술가들이 합세해서 만들었다. "공투"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구 [[좌파]]나 [[신좌익]]의 어느 당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를 일본에서는 논섹트 래디컬(급진파)라고 부른다. [[전공투]]의 대부분이 어느 당파에도 속하지 않은 급진파 학생운동가들이었다. 일본은 [[일본 공산당]]과 [[일본사회당(1945년)|사회당]]이 있기 때문에 정당 산하의 단체나 내부의 청년위원회가 학생운동 또는 청년운동을 조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한국은 진보정당이 1990년대나 되어야 겨우 생겨나기 때문에 일본과는 상황이 굉장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쇼와 천황]]이 1987년에 [[오키나와]]를 방문하게 되자 이 일에 반대해서 급조해서 만들어져서 이름이 가을 폭풍이다. [[쇼와 천황]]이 병석에 누우면서 [[일본]] 내에서 자숙하잔 분위기가 일어나자 반발했지만 [[쇼와 천황]]의 장례식과 [[아키히토]] 천황의 즉위식을 거치면서 1991년 이후 활동을 거의 안 했다. [[일본 경찰]]에 폭행당해서 [[도쿄도]]에다 재판을 많이 걸었다고 한다. * 오와텐넷토란 단체도 천황제 폐지를 주장한다. 도쿄역 황거 쪽 광장에서는 대상제가 시작된 2019년 11월 14일 밤 ‘천황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오와텐넷토 회원 150여명이 항의 집회를 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황거 쪽을 향해 “천황 그만해, 즉위 반대”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천황제는 필요 없다”고 외쳤다. * --[[일본 공산당]]--: 1946년에 일본 공산당이 [[일본인민공화국]]이란 이름으로 낸 헌법 초안이다. 결국은 평화 헌법이 [[일본 헌법]]이 됐지만. [[일본인민공화국 헌법|전문은 여기에]]. 2004년까진 [[자위대]] 해산, 천황제 폐지를 주장했으나 2004년 이후로는 공식적으로 공화제는 포기했거나 유보한 상태로 보인다. * 반천련(反天連)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Anti-Yasukuni_Shrine_Demonstration_by_Hantenren-1.jpg]] 반천황제운동연락회(反天皇制運動連絡会)의 준말로 1984년 쇼와 기념 공원 설립에 반대한 비평가 간 타카유키(菅孝行)가 세웠다. 1991년 이후론 활동이 많이 줄었다. [[나루히토]] 즉위 당일에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080007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